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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손으로 감싸는 남성

    생각 지우기의 역설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기억을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할 때, 그 생각이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우리 뇌의 정보처리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는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의식적인 경로로, 주의를 기울여 정보를 처리하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의식적인 경로로, 자동적이고 당연시되는 길입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려고 할 때, 이는 의식 경로로 접근하게 되어 그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고 강화됩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는 의도적 망각의 역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바 있습니다. 그가 진행한 실험은 이렇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한 그룹에게는 "다음 5분간 '북극곰'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라"라고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별다른 지시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북극곰을 생각하지 마라"라고 지시받은 그룹의 참가자들이 5분 동안 훨씬 더 자주 북극곰을 떠올렸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우리 뇌가 "북극곰을 생각하지 마라"는 지시 자체를 처리하기 위해 일단 "북극곰"이라는 개념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망각하라는 명령 후에 그 대상을 먼저 기억하게 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웨그너는 의식적으로 억누르려 했던 생각이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른다는 '의도적 망각의 역설'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망각을 시도한다는 것은 곧 '없애기'의 과정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이 '없애기'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떠올리기'의 과정이 함께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령 '북극곰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라'는 지시가 들어왔다고 합시다. 이때 뇌는 먼저 '북극곰'이라는 정보를 의식적으로 떠올려야 '없애기' 명령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즉 '없애기'를 위해서는 기억의 흔적을 찾아 그 정보를 한번 더 확인하는 '떠올리기' 과정이 선행됩니다. 이는 마치 파일을 삭제하기 위해 먼저 그 파일을 열어보듯이 '없애기' 전에 반드시 해당 정보를 의식 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의도적 망각 시도 시 '없애기'와 '떠올리기'의 이중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생각이 더욱 부각되고 강화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금단의 역설

    사람들은 달콤한 음식, 약물, 담배와 같은 중독성 물질을 끊고자 할 때 종종 금단 현상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런 금단 시도가 시작되면 더 이상 그 물질을 섭취하지 말라는 다짐을 하게 되죠. 이때 문제는, 뇌가 그 물질 자체를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금지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의도적인 금단 시도는 오히려 그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구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낳습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의도적 망각의 역설'과 유사한 원리로, 뇌가 금지된 물질을 기억하고 있음으로써 오히려 그 물질에 더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단을 시도할 때는 의식적인 통제보다는 자연스러운 태도 전환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영국 심리학자 제임스 어스킨은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금지가 오히려 유혹을 부른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을 3그룹으로 나누었는데, 한 그룹에게는 "다음 5분간 초콜릿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라"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른 한 그룹에게는 "초콜릿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해 보라"라고 지시했고, 나머지 그룹에게는 아무 지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5분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었더니, 결과는 놀랍게도 "초콜릿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라"라고 지시받은 그룹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 양의 초콜릿을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통해 어스킨은 '~하지 마라'는 지시 자체가 오히려 그 행동에 대한 욕구와 유혹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거 하지 마라"는 지시를 종종 듣습니다. 부모나 선생님이 금하는 것들이 있죠. 이런 '금지'의 경험은 인간 정신에 깊이 배어들어, 의식하지 못한 채로 우리의 행동 양식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특히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명령조의 금지는 그 행동 자체를 의식의 초점으로 끌어들이기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지된 행동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가 부채질되고, 생각보다 훨씬 더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의식적 금지가 오히려 그 행동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금지된 것에 대한 욕구가 강화되고, 그것을 해보고 싶다는 유혹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의도적인 통제가 역효과를 낳는 정신 현상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불필요한 생각 없애는 법

    우리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다수는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떠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를 '디폴트 모드(기본 모드)'의 자동 생각이라고 합니다. 디폴트 모드는 의식적인 통제 없이도 자연스레 진행되는 마음의 자동 주행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본 풍경이나 사람들의 대화가 무의식 중에 떠오르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이는 의식의 노력 없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흐름인데, 이를 억지로 차단하거나 통제하려 하면 오히려 그 생각들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합니다. 디폴트 모드의 자동 생각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생각이나 기억을 없애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주의를 의도적으로 돌려 다른 활동에 몰두하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치 않는 기억이 떠올랐을 때, 주변 환경에 집중하기, 긍정적인 생각 가지기, 책 읽기 등의 방법으로 주의를 전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운동은 뇌의 집중력을 높여주므로 매우 효과적입니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 의식을 호흡이나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뇌의 처리 능력이 그쪽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생각을 잠재우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죠. 이처럼 의도적 주의 전환으로 뇌를 다시 훈련시키며 불필요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불필요한 생각이나 기억이 끊임없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때 억지로 그것을 차단하려 하면 더욱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오히려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잠시 감수하는 자세가 도움이 됩니다. 우리 마음은 때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파도와 같습니다. 힘겹게 파도를 밀어내려 해도 더욱더 거세지기 마련입니다. 그저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순순히 기다리고 견디어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이처럼 마음속 생각의 흐름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오히려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약간의 인내와 함께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불필요한 생각을 제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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